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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야기]

[차이야기] 우리나라 야생차의 시원

by 슈가콩 2023.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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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 야생차의 시원

야생차
차의 어린 잎

차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차의 보급은 세계 여러 나라로 퍼지게 되었는데,동양에서는 녹차,서양에서는 홍차로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때 들어온것으로 알려져 있고,서양으로 전파된 것은 17세기 이후부터다. 하동은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야생차의 고장이다. 특히 하동군 화개면은 하동에서도 가장 많이 차생산을 하는 곳이며,중국에서 들여온 차를 처음 재배했던 차 시배지이기도 하다. 

하동 야생차를 만나는 여행은 차 시배지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차시배지는 쌍계사 입구에서 조금 치우친 운수리 석문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 흥덕왕 때인 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공이 차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었는데,그곳이 바로 쌍계사의 인근이다. 차 시배지는 지난 2008년 한국기록원으로부터 삼국사기의 신라·본기를 근거로 "한국 최초 차 시배지''로 공식적으로 인증을 받았다. 

차시배지에는 김대렴공 차시배 추원비와 함께 주변에는 차밭 사이로 산책로가 이어져 있고,고승의 차를 칭송한 글이 차밭 곳곳에 남아 있다. 차밭 위쪽에는 시배지다정이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가 있어 이곳에 오르면 차밭과 함께 화개천과 십리벚꽃길이 내려다보인다. 차 시배지와 함께 쌍계사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쌍계사를 중창해 크게 이름을 떨친 진감선사가 차를 널리 보급해 전통차의 문화가 탄생했다. 쌍계사에는 국보 제47호로 지정된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가 서 있다. 쌍계사 인근에 있는 하동 차문화센터도 한번 쯤 들러볼만하다. 차 문화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차문화 전시관과 차를 이용한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녹차체험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2. 매암 차 문화 박물관

하동군 악양면에 있는 매암 차문화박물관은 23,000r f의 매암다원,찻집 ‘매석’,차문화에 대한 전시공간이 있어 다원의 풍경과 함께 차문화와 차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다양한 차체험을 해볼 수 있는 체험형 박물관으로 손색이 없다. 매암다원은 1963년 조성되기 시작해 40여 년간 자연농법으로 일궈낸 친환경 생태다원이다. 

특히,지리산 산자락에 조성된 차밭과는 달리 악양면의 너른 들판에 조성되었고,차밭을 따라 산책로가 있어 아기자기한 풍경이 제법 좋다.매암다원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는 찻집 매석’이 서 있다. 다원에서 재배한 차로 만든 차를 마시며 차향을 공감하고,여유로운 시간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찻집 매석’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 차는 마음껏 마실 수 있고,사용한 다구는 깨끗하게 씻어서 정리해 두면 된다. 

차 값은 1천 원 이상 율적으로 내면 되기 때문에 부담도 없다. 매암 차문화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차체험도 해볼 수 있다. 그 중 홍차만들기는 독특한 체험 중 하나다. 홍차 만들기 체험은 조선시대 때 악양에서 만들고,마시던 홍차 만들기를 그대로 재현한다. 한마디로 조선홍차를 만들어보는 셈이다. 채엽과 찻잎 시들리기-유념-발효-건조의 과정을 거치는데,녹차와는 달리 덕음 과정이 없는 게 특징이다. 

차박물관
매암 차 문화 박물관

홍차 만들기 체험은 제조과정 중 채엽과 유념의 과정만 해보는데,채엽한 찻잎은 각자 가져갈 수 있고,다원에서 미리 따둔 찻잎으로 비비는 유념 과정을 체험한다. 유념은 찻잎을 비비는 과정으로 손으로 찻잎을 굴려 말아서 털기 작업을 하는데,찻잎에서 즙과 거품이 나올 때까지 해야 한다. 유념이 끝나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건조시키면 찻잎은 검게 변하면서 홍차가 된다.

 

3. 동양에서 치료제로 사용한 차

차의 기원은 약리성에 바탕을 둔다. 기원전 2732년, 차를 발견해 인류에게 전한 사람은 중국의 전설적인 황제 신농(神農)이라는 설이 강력하다. 신농은 인간에게 이로운 풀과 해로운 풀을 구분 짓기 위해 온갖 약초를 먹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진 적이 많았다. 여느 날처럼 산과 들을 누비며 약초를 찾아 헤매던 신농은 바람에 날아온 마른 잎이 자신이 마실 물 위에 떨어진 것을 보고, 호기심에 그 맛을 본다. 

그런데 물을 마시고 나니 독초의 기운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었다. 그 뒤로 신농은 독초를 먹었을 때면 차로 해독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차 문화가 전파되기 시작한 중국 당나라 무렵에도 차는 주로 약용(藥用)이었다. <다경(茶經)>을 저술한 당나라 육우는 그의 저서에서 ‘차를 오래 마시면 힘이 생기고 마음이 즐거워진다’라고 말했다. 

일본에 차문화가 들어온 데는 승려 에이사이(榮西)의 공적이 컸다. 그는 12세기 송나라에서 차나무 씨앗을 품고 돌아와 차 보급에 힘썼다. 에이사이는 차를 두고 ‘사람의 목숨을 늘리는 기묘한 술법’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정신 수양을 위한 도구로 차를 사용했는데, 차 마시는 행위를 불교의 참선과 동일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차를 약용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후기 대선사 초의선사가 집필한 <동다송(東茶頌)>을 보면 ‘차는 인간에게 좋은 약과 같으며 우리나라 차는 중국차에 비해 약효나 맛에 있어서 뒤지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또 다산 정약용 선생도 체기를 내리기 위한 약용으로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다원
차 수확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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